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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구름바람산
명상 & 의식

의식에 관한 글

by 고요한 강 2019. 2. 23.

 

 

 

“무엇보다 먼저

자기-이해(self-knowledge)가 없는 명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단다.

 

 

자기-이해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니야.

상위 자아나 하위 자아와 같은 것들은 다만 관념이자,

마음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다.

 

그리고 마음이란, 곧 시간인 것이고 시간은,

시간을 넘어서 있는 그 무엇(the Timeless)을

결코 밝혀낼 수 없단다.

 

그러므로 참된 명상을 할 때 상위 자아에 집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이지.

명상이란...

생각의 모든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란다.

그리고 생각이란 곧 기억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 작업은 지금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란다.

 

진리란, 시간에 속해 있는 문제가 아니며.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

그 것(眞)이 지금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은 시간을 넘어서 있는.. 그 무엇을 결코 밝혀낼 수 없단다.

기억-생각은 시간의 산물일 뿐이야.

 

 

과연 그렇지 않니?  자 그럼

자아(self)란 무엇일까? 명백하게도

그것은 기억일 따름이네.

높은 차원이든 낮은 차원이든 할 것 없이

그것은 여전히 기억일 뿐이지.

 

내가 전에 말했듯이, 상위 자아와 하위 자아에 대한 관념은

단지 추측에 불과하며,그것들은 마음의 산물이지 그렇지 않니?

네가 자신 안을 들여다 본다면,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게(find out) 될 것이란다.

 

고차원의 자아와 저차원의 자아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전에 네가 어디선가 읽은 관념일 따름이지.

너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실재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야.”

 

“너는 상위 자아를

아트만-영(Atman-spirit)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만,

그것은 여전히 마음 안에 있는 관념일 뿐이야.

 

네가 그것을 아트만이라 부를 때,

너는 그것을 높은 차원으로 올려다 놓는 것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기억의 한 부분에 불과하단다.

 

그러므로“나(myself)의 모든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너는 반드시 기억, 관념, 생각들을 이해해야 하는데,

사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것이란다.

생각이나 기억이 없다면 자아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방금 전이나 최근에 획득한 기억뿐 만 아니라,

세기의 기억(the memory of centuries)까지도 이해해야 한단다.

 

세기의 기억이란, 시간을 통해 경험된 것들의 축적이자

과거의 모든 영향력을 모아 놓은 것의 결과를 말한단다.

의식의 표면에 있든 심층에 있든지 간에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기억이란다.”

 

“그러나 기억의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세세히 탐구(investigate)하자면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다.

그런데 시간은 결코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단다.

왜냐하면 진리는 시간을 넘어서 있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시간을 사용하여 분석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넘어선 그것을 밝힐 때에도

시간을 사용하는 습관에 젖어 있단다.

그러니 그들에게 진리는,, 언제나 저 멀리에 놓여 져 있을 것이야.

 

“이제 우리는 생각이란 기억의 결과라는 것과

 기억은 반드시 즉각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통찰에

 (realization) 이르게 되었단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자아 즉 바로

(the you) 기억의 다발에 불과하며,

그 것들은 -생각의 형태로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생각과 자아란 분리되어 있지 않아. 그 것들은 하나이지.

이 것은 결코 진리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또한 진리를 드러낼 수도 없단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마음을 넘어서고, 기억을 넘어서고,

시간을 넘어선,,,그 무엇에 이르러야만 한단다.

 

그러나 기억이 작동하고 있는 한, 거기에는 다만 시간이 있을 따름이고

시간은 실재가 될 수 없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도 그가 하고 있는 말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었으며,

내 안에서 변혁(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을 이제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마음이란, 시간과 기억과 관념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see) 수 있었다.

 

자유로워 지고자 한다면?

마음은 자신이 결코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높은 차원이든 낮은 차원이든,

기억은 결코 자신을 넘어서 있는... 그 것을 드러낼 수 없다.

나는 마음, 즉 내(the me)진리를

결코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볼(see) 수 있었다.

 

오로지,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나는 진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때,

마음은 고요(still)해졌다.

 

그 고요함은 힘에 의해 강요된 고요가 아니라

자유를 통해 온 고요함이었다.

나는 더 이상,,,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고 바라지 않았다.

무엇인가로 되어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져버렸다.

 

내 마음은 결코,자신을 진리로 변모(transform)시킬 수 없었다.

또한 마음은 진리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마음은 고요해져야만 한다. 그러면 그때 시간에 속해 있지 않는

고요함이 들어서게 된다.

 

그 고요함은 힘이나 강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찾아오는 고요함이다.

 

마음이 생각을 지어내며, 재잘대는 것을 멈추었을 때,

그 침묵 속에, 실재가 존재하며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the Unknown)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성(creativeness)이다.

 

나는 결과에 대한 그 어떤 욕구도 갖지 않았다.

모든 행동이 멈췄고, 생각도 멈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각의 최고 형태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제 그 자리에 창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이제 더 이상 기억이나 과거도 아니었으며,

전에, 참이나 거짓이라 생각했던 것의 표현도 아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들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모든 지적 행위가 멈췄다.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도, 뭔가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wander or wonder).

이제 생각도 생각하는 자도 없었고, 경험도 경험하는 자도 없었다.

기억이나 시간을 통한 경험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소멸된 가운데,, 경험의 상태만이 지속될 따름이었다.

 

어제 오늘 내일은 완전히 멈추었다.

그 것들은 마음의 바깥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더 이상,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은,,, 시간 없이 존재하며,

시간 없이 존재하는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원인도 없고

따라서 결과도 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원인을 갖고 있지 않은,

그 것(that which is without cause)

바로 실재이다.

아버지(the Father)께서 그분의 일을 하시고 계실 따름이다.

여기에, 바로 창조성,즉 완전함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진리가 거기에 즉각적으로 들어섰다는 것과

(I saw now that the Truth was immediate),

시간의 산물인, 마음이 완전히 멈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생각은, 시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순간,

모든 인간의 문제는 시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즉시 해결될 수 있었다.

 

실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for Reality had no problem).

오직 사람만이 자신의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이것을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또한 나는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란 기억과 경험과 시간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문제들은 문제 자신이 발생한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오직 기억이 작동하길 그쳤을 때, 문제들은 그 순간 즉각적으로 해결되었다.

 

그것들은 시간을 넘어선 무엇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으며,

시간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 마음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만 홀로 존재하고,

그밖에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모든 문제는

사랑과 지혜이신 신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

 

내가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자,

창조성이 들어섰으며(came into being)

나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한자(Infinity) 만이 유일한 실재였다.

 

나는 더 이상 되풀이하는 기계가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며, 시작도 없고 따라서 끝도 없이 활발히 움직이는

창조 원리(active Creative Principle) 그 자체였다.

 

이제 나는

자기 이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자아는 실재 안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나는 실재가 곧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이 유일한 시간이다. 내일도, 어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가리고 있을 때,

지금(the now)은 깨달아질 수 없다.

 

그러므로 명상이란 자신을 구속하고 제한하면서

다른 것들을 배제시키는 집중의 수단이 아니다.

 

 

명상이란 자유로움이다.

 

시간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time).

이제 나는 오직 하나(One)만이, 항상 새로워지는

그것(the Ever New)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원성도, 대립 되는 것도, 욕구도, 갈망도,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것들은 모두 마음에서 속한 것이었고,

분리(separation) 속에 살고 있는 것은,, 바로 나(the me)였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였으며, 그리스도의 요가만이 유일하게 참된 요가였다.

이제 나와 내가 소유한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오로지 전체만이 실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방울이 바다가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주(Master)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 뜻을 알았다.

이 말은 단순한 관념이 아닌 생생한 실재였다.

 

생각하는 것(thinking)만으로는 결코 실재를 창조해낼 수 없는데,

생각은 시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은 시간을 넘어선 그 것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사실을 이제 알았다. 기억의 산물인 생각이 그쳤을 때에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생각이 끝장이 나야만, 영원한 그것이 들어서게 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은 이 고요함 속에 존재자(Being)가 있었다.

 

이 고요함 속에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순간에서 순간으로

항상 지금에 현존하는 그것(the Ever-Present-Now)이 있었다.

 

이제 나는 상위 자아도 하위 자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것들은 분열의 또 다른 형태로써,정신으로 만들어낸 개념일 따름이었다.

자아가 어떤 차원에 속해 있든지 간에, 자아는 단순한 관념에 불과했다.

시간의 관념은 환상이기 때문이다.

 

 

☆  ☆  ☆

 

바로 그때 내 친구와 수도원장이 와서 우리 옆에 앉았다.

내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그대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둘다 세상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렸단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는 말했다.

“이 곳은 게쉬 림포체가 가장 아끼는 안식처 중 한 곳이란다.

 

네가 잠사르에서 돌아오게 될 때, 그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링마탕까지 그와 나는 너를 배웅해 줄 것이란다.

네가 혼자 가게 내버려 둘 수 없거든.”

나는 대답했다:“저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오전의 나머지 시간 동안은 라사와 포탈라 사원 등과 관련된 일반적인 주제로 대화가 흘러갔다.

곧 정오가 되었고 한 라마승이 와서 음식이 준비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식사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했었는데, 맛있는 보리죽과 아름답게 요리된 양고기와

보리밀로 만든 빵과 신선한 버터와 그리고 (약방의 감초처럼 항상 등장하는)

티베트 차가 있는 것을 보고서는 굉장히 기뻐했다.

 

이제 나는 이 차에 길들여졌고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까리기름(castor oil)을 먹는 듯 역했지만 말이다.

차와 야크 버터와 소금을 끓는 물에 넣으면 이 훌륭한 혼합물들이 티베트 차가 되는 것이다!

게쉬 림포체는 이미 수도원장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말해 주었고,

수도원장은 티베트말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당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께서 하고 계시다는 일과 당신이 계시던 곳에 대해 모두 듣고 싶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니 너무나도 우습게도 나도 모르게 티베트말로 그럭저럭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떤 단어들은 강세를 제대로 넣어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났을 때, 내 친구와 게쉬 림포체는 둘 다 내 티베트어 실력에 대

해 인정한다는 의미로 박수를 쳐주었다. 오후에는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트락체 수도원 안에는 500명의 라마승들이 있었다.

수도원의 정면은 거대한 바위면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깎아지는 절벽의 높이는 계곡까지 1000 피트(300m)는 넘어 보였다.

수도원을 짓는 것 자체가 초인적인 임무였을 것이다.

사원 건물에는 거대한 나무 줄기가 있어 지붕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어떻게 저 나무들을 끌어 올렸지요?” 나는 물었다.

“모두 손으로 작업한 거라네.”그는 대답했다.

“여기에 사용 된 나무들은 모두, 한 그루씩 여러 개의 밧줄로 고정시킨 다음,

기꺼이 이 공사에 참여 하려는 사람들의 협력으로, 손으로 끌어 올린 거란다.

저 거대한 돌들은 바위 표면에서 잘라내어 토막을 낸 것이지, 너도 알다시피,

아마 티베트의 건축가들이 이런 종류의 공사에 있어서는 단연 세계 최고일 것이야.”

 

모든 수도원들은 서로 매우 닮아 있었지만, 이 수도원은 바로 산 위에 있는 바위 표면 위에 높이

세워졌다는데 있어서 독특했다. 계곡 아래로는, 수도원의 정면에 해당하는 곳에서 캬 추(Kya

Chu) 강은 로빙 추(Robing Chu) 강과 합류하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강물은 거대한 바위들

과 부딪히며, 급행열차가 지나가는 듯 굉음을 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캬 추 강을 따라 나란히 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잠사르까지 이틀만 더 여행하면 도착하게 된다. 상쾌한 하루였으며

나는 여행의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기력이 회복 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내 친구가 그 토록 많이 이야기해 주었던 그의비밀 안식처를 보기를 열망했다.

 

그날 밤 나는 전날처럼 깊이 잠들었으며, 이틀간의 여정을 하루만에 다 소화할 수 있을듯

느꼈다. 나의 이런 기분을 내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남아 있는 거리는 족히 30 마일(48km)을 넘으며, 길도 험하단다. 길을 걸을 때에는

반드시 안전한 부분을 디디고 걸어야 한단다. 굉장히 위험한 곳들이 군데군데 있기 때문이고,

그 부분에서는 조랑말을 탄 채로 건너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단다.”

 

다음 날 아침 6시경에 우리는 그곳을 떠나 출발했다.

우리는 그날 밤까지 데첸 드종(Dechen Dzong)이라 부르는 곳까지 도착하고,

다음 날에는 잠사르에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타고 왔던 조랑말들은 수도원 소속으로 되어 있는 마구간에 있었으며,

우리는 게쉬 림포체와 수도원장에게 Au revoir 라고 기쁘게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식으로 가득 차 있는 양식 자루를 맨 상태로 표면이 돌로 되어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조랑말을 탔고, 그곳을 떠났다.

아침에 불어오는 신선한 산들바람을 들여 마시면서 강물이 바위에 부딪혀

사방으로 물보라를 품어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게다가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의 모습은 그 자체가 큰 활력이 되었다.

라사를 넘어선 곳까지 여행한 서구인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있더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의 중요성을 느꼈다.

 

3장

 

트락체 곰파(곰파란 수도원을 뜻한다)를 떠나 조금 걷다보니, 장엄한 폭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물은 좁은 계곡을 통과하여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물은 50 피트(15m) 되는 곳에서부터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며, 귀가 멀 정도로 굉음을 만들어 냈다. 물이 절반 정도까지 내려

왔을 때, 그 물은 다른 바위 턱에 부딪혔고, 그 물이 쏟아진 곳 바닥에는 거대한 웅덩이가 파여

있어 그리로 물이 들어갔다. 우리가 가는 길은 여기에서부터 산허리로 올라가는 길로 이어져 있

었으며, 거기를 빠져나가면 오른 쪽에 있는 젠쉬(Zenshi)라 부르는 비옥한 넓은 지대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캬 추 강이 통과하는 이 계곡을 따라

서 꽤 많은 티베트 사람들의 집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거위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거위는 머리에 검은색 줄무늬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으며 목 뒤로도 검은 줄무늬가 나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를 보자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대었

다. 내 친구는, 이 지역에서는 그 거위들을 머리줄무늬 거위(bar-headed geese)라 부른다고 말해

주었다. 또한 리들도 엄청 많았으며, 독수리들(vultures)과 팔라스(Pallas)라 부르는 물고기

독수리들(fish eagles)좀 보였다. 팔라스라는 새들의 부리는 길쭉하면서 끝부분은 아래 쪽으

로 살짝 휘어 있었는데, 강에 사는 물고기들을 급강하하면서 낚아채고 있었다. 다른 종류의 새들

엄청나게 많이 있었으며 우리 머리 위를 돌며 울어대었다.

 

형형색색의 많은 나비들도 주변에서 나풀 거리며 날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나비들을 모으는 수집가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이겠거니 생각했다. 농사를 짓지 않는 곳에서는 야생화와 철쭉(rhododendron tree)

자라고 있었다. 많은 종류의 도마뱀들도 보였는데, 그 중에 위험한 종은 얼굴이 모가 나 있는 것

이었다(one dangerous if cornered). 그것은 검은 큰바위 도마뱀(big black rock lizard)이었으

며, 3 피트(90cm) 가량의 길이에 커다란 발과 긴 턱을 갖고 있었다. 주변 경관은 뛰어나게 아름

다웠다. 사방이 다 산이었고, 만년설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햇빛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으며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그러나 정오 때가 되면 항상 바람이 일어났듯이 이제 곧 바람이 불어올 것이었다.

이 지역을 떠날 당시 우리는 험하게 등산해야 할 곳이 있었다.

한 번은 강가 근처로 내려갔다가 산 허리께로 높이 올라가야 했다. 이제 껏 우리가 걸어 온 길은

꽤 좋은 편이었으나, 앞으로 가야할 길 중에는 위험한 곳들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 여행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수 많은 강들이 캬 추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는데, 이 강들은 주변에 있는 산들로부터 내려

것들이었다. 일 년 중 이 시기에는 눈이 녹기 때문에,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끊임

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면, 이 강들은 다시 얼어붙게 된다. 그때에는 강

나 호수를 건너는 것이 훨씬 쉬워지기는 하지만, 두텁게 쌓인 눈을 헤치고 가야 하기 때문에

행 자체는 훨씬 어려워진다.

 

우리는 수많은 티베트인들을 마주쳤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고 남자들도 있었으며,

야크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당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야크의 행렬 중 팔 물건을 실고 라사를 향해 가는 야크들도 좀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당나귀보다는 야크를 주로 이용했는데, 야크가 당나귀에 비해 먹이기도 쉽고

다리 힘이 좋아 잘 넘어지지 않아 보다 무거운 짐을 나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딸 둘로 이루어진 한 가족을 만났는데, 내 친구가 알고 지내는 집

안이었다. 그들은 이제 곧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잠사르에서 라사(Lhasa)로 여행하는 중

이었다. 거대한 수도원들은 일 년 중 이 시기에 큰 축제를 열었으며 사람들은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 멀거나 가깝거나 할 것 없이 그리로 모여들었다.

 

내 친구는 나를 그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딸 두 명은 모두 전형적인 히말라야인으로서,

아름다운 티베트 여인들이었다. 그들이 웃을 때 눈은 반짝였으며, 아름다운 입술이 미소를 지을

때, 완전히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나는 언니에 해당하는 여인에게 내 빈약한 티베트 말로 말

을 걸었는데, 그녀는 놀랍게도 영어로 대답하였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다즐링에 있는 학교에 다

녔었고 자신의 이름은 노르부(Norbu)라고 말했다. 노르부라는 이름은 티베트인들 사이에서는 많

쓰는이름 이었고, 귀한 보석이라는 뜻이었다. 노르부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그녀만큼 예쁜 다른

여인도 알고 있다고 내가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머리끝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영어로 더 많이 이야기” 할 기회를 얻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 친구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잠사르 지역에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

다. 그러나 내 친구는 티베트 말로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녀와 나는 전에 인사를 나눈 것을 바탕으로 더 친해질 수

있었다.그녀는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내 친구에게 말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군요!”

“그렇지,”그는 말했다.“그녀는 의심할 바 없이 티베트 미인이지.

그녀의 모습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완전히 달라.

이 지역 사람들의 모습은 네가 보았듯이 얼굴이 좀 넓적하고 코가 평평하게 퍼져 있단다.

반면에 그녀는 야퉁 지역 출신인데, 그 지역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아름답게 생겼단다.”

 

티베트의 여성들은 다른 모든 서구 여성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다른 동양 여성들이 뒤로 물러나듯이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성들과 대화할 때에도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티베트 여성들은 자유로우며 개방적이고, 이것 때문에 그들은 매력이 넘칠 정도로 다른 나라의 여성들과 다른 것이다.

 

우리는 오후 2시 30분경에 탕캬(Tankya)라는 곳에 도착해서, 그 날의 첫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몇 분도 지체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어두워지기 전

에는 반드시 데첸 드종(Dechen Dzong)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밤에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했

고, 낮에 걸어도 힘들고 위험한 구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소한 네 시간 이상 여행을

해야 했고,자연스레,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염려하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앞서가고 다른 사람은 그 뒤를 따르는 방식인 인도 방식으로 밖에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친구는 항상 앞서가겠다고 하였으며, 나는 그의 뒤를 곧장 따라갔다.

우리는 여전히 캬 추 강을 따라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탕캬를 떠난 후, 길은 강가를 따라 나 있

었으며 그 거리는 수 마일에 이르렀고, 오늘의 가장 긴 여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여행하는 길 중 어느 부분은 강물이 매우 부드럽고 깊게 흘렀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산에서 굴러 내려온 거대한 돌들이 강물에 실려 떠내려 오기도 하였다.

이는 매우 자주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였고, 우리는 이를 항상 조심해야 했다.

무엇인가 와르르 굴러오는 소리가 난다 싶으면

우리는 반드시 길에서 벗어나거나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염소나 야생 야크들이 밟고 지나다니다보면 돌들이 헐거워졌고,

그것들이 굴러 내리면서 다른 돌들도 헐거워지게 하여 같이 굴러가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등에 작은 짐을 얹고 다니는 양들을 보았다. 티베트에서 양들이 짐을 실고 다니는 것은

꽤 흔한 일 중 하나였는데, 소금 호수(salt lake)에서 나오는 길에서는 특히 더 자주 있는 일이

었다. 티베트에 있는 소금 호수는 해발 15,000 피트(4500m)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가를 따라서 몇 마일을 걷은 후, 길이 생각보다 편해서 나는 이 길이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갑작스레 멈춰야 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허리로 올라가

야 하는 곳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쯤 가다가 내 친구는 멈추더니 조랑말에서 내렸고,

나 역시 그를 따라서 똑같이 행동했다. 이 곳은 사실상 길의 한 부분이 강 아래로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이 경사진 곳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으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불과 몇 분 전에 길의 한 부분이 붕괴된 듯 하였다.

 

나는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 마일(800m) 정도 되돌아가서, 아까 시냇물이 흐르던 쪽에 있던 다른 길로 가자.”그는 대답

했다.“거기에 더 높은 곳으로 이르는 길이 있고,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란다.”우리는 그가 말했던 지점까지 되돌아갔다. 그때 그는 기도문이 적혀진 깃발(prayer

tag)을 찢더니, 그가 갖고 다니던 검은색 초크(chalk)로 경고문을 적었다. 그 길을 걷게 될 사람

들이 혹시라도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왜 우리가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하는지 알았습니다.”나는 말했다.

우리는 아까 그 길보다 1/4 마일(400m) 정도 위에 있는 길에 도착할 때까지 하천의 바닥을 올라

갔다. 이 길은 산을 넘어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어떻게 이런 길까지 알고 계세요?” 나는 물었다.

“이 지역에서 내가 모르는 길이란 존재하지 않아. 나는 이 길로 꽤 자주 다니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말이야.” 그는 대답했다.

우리는 이 길로 쭉 갔고, 이 길은 꽤 좋은 편에 속했다. 한 3-4 마일(5-6km) 정도 갔을 때,

하천바닥으로 내려가는 오래된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는 데첸(Dechen)까지 가는 길은 내내 꽤 쉬운 편이었다.

우리는 데첸에 저녁 7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이제 땅거미가 막 지려던 참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싶

어서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내 친구를 환영해 주러 나온 것이었다.

그는 데첸 드종 지역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덕 중턱에 있는 예쁜 집으로 갔는데, 맑은 시냇물이 집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집 주변에는 기도문이 적힌 깃발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는 그때 그 광경을 주의 깊게 보았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말했다: “이 사람은 이 지역의 이장(headman)이란다. 그의 이름은 이암초(Iamtso)

지. 이 집은 꽤 아늑하고 오늘 밤은 여기서 쉴 거란다.” 우리가 조랑말에서 내리자, 문이 열리

티베트인이 달려 나와 살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내 친구의 손을 잡고는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

데, 이는 티베트에서 그 사람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하는 최고의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이장의 부인이 이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고, 우리는 양고기, 보리빵, 감자, 티베트차를 먹었고,

좀 지나서 보리로 만든 티베트 맥주도 마셨다. 우리는 밤 11시까지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까지 이암초가 자신이 직접 만든 곡을 현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는 꽤 능숙하게 악기를 다루었다. 그가 연주하는 선율은 너무나도 황홀하여

나는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좀 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단다. 내일도 꽤 힘든 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지.”

내가 몸을 뉘인 침대(couch)는 대나무와 야크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침대는 링-쉬-라 은수자의 암자를 떠난 이후로 최고로 편안한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음식 냄새가 풍겨왔는데, 야크 스테이크와 계란과 보리빵과

티베트 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리겠다는 약속을 한 후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이암초는 가는 길에 먹으라고, 요리를 한 닭 두 마리와, 삶은 계란과 보리빵을 챙겨주었다. 우리

는 음식을 가져가기를 원치 않았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우리 손에 쥐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우

리는 잠사르까지 가는 여행길의 마지막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다음 몇 주 동안 나를 위해 마련

되어 있는 일들을 생각하니 나는 행복해졌다. 우리는 강을 따라서 5 마일(8km) 정도 여행한 후에

강을 건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작은 배(coracle)를 타고 강 반대편으로 건넜는데, 잠사르

까지 가는 길은 강 반대편을 따라 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2 마일(3.2km)을 더 간 후 강가에서 점심을 들었다. 강변은 야생화들로 뒤덮여 있었고,

강 양 옆에 있는 산허리에는 철쭉이 활짝 피어 거기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결코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는 나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캬 추 강 옆에 있는 내 친구의 안식처를 보았을 때

그곳은 내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곳은 링-쉬-라 은수자가 있는 곳에 비길

만큼 아름다웠지만, 완전히 다른 식으로 아름다웠고,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겠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는 캬추 江의 水源에 해당하는 잠사르에 도착했

다. 높이 솟아올라 눈으로 뒤덮인 산들 사이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크고 작은 다양한 빙하로부

터 흘러내리는 수많은 물줄기들이 캬 추 강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잠사르 주변에는 녠첸탕글라

(Nyenchentangla) 산맥이 솟아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평균 높이 23000 피트(7Km)에 달하는 가장

장엄한 산맥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훨씬 넘어섰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나는 이 광경을 하나라

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 친구가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웅장한 곳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곳은 도저히 말로 담아낼 수 없다.

 

그는 다양한 산들을 가리키면서 그 이름과 높이를 말해주었다. 산들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그 다

음에 보는 산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 모습은 참으로 장엄했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그

대도 이 절경을 볼 수 있다면, 높이 솟아오른 산들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듯이 보여, 산들이

그대 위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잠사르 지역만 하더라도 해발 14000 피트

(4267m)에 위치하고 있었다.

 

산허리에서 나는 홀로 우뚝 서 있는 하얀 건물을 보았는데, 순수한 티베트 건축물로서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야생화와 철쭉이 활짝 핀 것은

물론이고 거대한 야자나무와 잘 가꾸어진 정원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노란 중국

귀비와 젠시안(Gentian)과 세네치오(Senecio)와 다른 꽃들도 있었는데 모두 활짝 피어 있었다.

 

강 근처에는 수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집까지 물을 댈 수 있게 하였다. 관개 시설은 곳곳으로 뻗

어있어서 백합이 있는 못에도 물을 대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큰 못도 있었는데, 그곳은 흐르는

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조금 더 위쪽으로는 온천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뜨거

운 물이 방금 전에 언급한 커다란 못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뜨거운 물은 집에서도 쓸 수 있

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서 평생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감탄하여 외쳤다. “이 곳이

바로 내 지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싶은 곳이에요. 서구 세계에 이곳에 대해 기록해서 알린다면,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겁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이런 아름다운 곳을 결코 살 수는

없지요.”

그렇다, 나는 흥분하여 내 친구에게 마구 지껄였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젠 네 것이란다. 지상에서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이 곳은 네 것이야.

이제 이곳을 너에게 맡길게.”잠시 동안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아직 제가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여기로 돌아와 지낼 수 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자네가 이곳으로 되돌아올 때가 올 걸세.”

“육신을 입고 살아 있는 동안에 말입니까? (In the physical?)

“그렇다네.”그는 대답했다.“살아 있는 동안에 말이지(In the physical).”

아마도 미래의 어느 날 나는 그리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

지금으로써는 최소한 이사실 하나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말했다: “그동안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고,

이제는 이런 일도 벌어지는군요.” 이런 곳을 안식처로 삼고 쉴 수 있다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곳을! 그렇다, 잠사르는 내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나는 너무나도 놀라워 물었다.

“설마 지금 저를 놀리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아들아, 절대 그렇지 않단다.

 

평생 너를 따라다니며 함께 지냈던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내 삶은 네 삶이고, 네 삶은 곧 내 삶이야.

우리 삶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겠니 (How could it be otherwise)?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 났으며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침을 삼켰다!

그는 이런 나를 보더니 내 어깨 위에 팔을 올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고, 너를 내 곁에 둘 수 있는 이 날이 오기만을

오랜 동안 기다려왔단다. 그런데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 같구나.

이 일 뒤에는 너와 나 말고도 더 높은 영적인 힘(higher forces)들이 있단다.

 

후에 너와 이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네가 떠나왔던 세상으로 돌아가

네 일이 끝날 때까지 너는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한단다.

신께서 너를 지켜주고 보호해주실 거란다.

 

너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던

그 생명(the Life)은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기 때문이지.”

 

그가 이 말을 마치자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문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홀로 이어져 있었다.

마루에는, 매우 값지고 매우 커다란 고대 중국 도자기들이 몇 점 있었다.

그리고 마루는 나무로 되어 있었고 윤이 났다.

 

벽은 정교한 디자인에 광택이 나는 나무 작품으로 장식 되어 있었다.

홀의 끝에는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은 중앙에 있는 커다란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 방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작은 방들(alcoves)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각각의 작은 방들에는 브로케이드가 커텐으로 걸려 있었다.

중앙에 있는 큰 방의 바닥에는 귀한 중국 양탄자가 봉긋하게(embossed) 깔려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방들에는 티베트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어떤 방들에는 탁자가, 다른 방들에는 침대가 있었다.

 

이 방의 뒤쪽으로는 다른 개인적인 공간들도 있었는데,

침실 겸 거실도 있었고,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주방과 별채는 본 집과 떨어져 있었고, 고기를 몇 주 동안이고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밀폐 된 저장소도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덕분에 냉장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온천에서 집안으로 끌어온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그러고 나서 준비된 저녁 식사를 들었다. 내 친구는 내가 지낼 특별한 숙소를 보여 주었는데,

그 방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작은 방들 중 하나였다.내 친구는 내가 피곤하다는 것과

그래서 어서 침대로 가 잠을 자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고, 아침이 될 때까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 태양이 막 뜨려던 참이었다. 나는 집 앞에 나 있는 계단으로 갔다.

그 아름다운 장면은 결코 말로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안식처의 정면은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보고 있었으며, 태양 빛은,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만년雪에 반사 되어 모든 색깔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짙은 붉은 색에서 노란 색으로 바뀌면서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다채로운 야생화들 위에 내린 이슬방울들은 태양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침식사로 우리는 야크 스테이크와 계란 프라이와 보리빵과 신선한 버터를 먹었다.

내 친구가 말했다:“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단다. 잊지 않도록 네가 묻고 싶은 질문은

모조리 적어 놓아라. 우리가 여기 계속 지내는 가운데, 그 것들에 대해 함께 토론을 하게

될 것이." 나는 그렇게 했고 많은 질문들을 준비해 놓았었다 런데 우리가 지내는 가운데,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모두 받았다!

 

그를 처음 보았을때 그가 나에게 처음 던졌던 말이 번개처럼스쳐 지나갔다 "

그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그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나는 이곳에 오기전에 내가 마음에 갖고 있던 것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정신적 개념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내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고,내 마음엔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다

(my mind had been completely transformed).

 

“ 왜냐하면

내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실재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은 그저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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